Reference: http://m.ciobiz.co.kr/20090705120001

어제의 강자가 오늘의 강자는 아니다. 요즘 전세계 자동차 업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GM, 크라이슬러의 파산에 이어 최근에는 포드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자동차 ‘빅3’의 영광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금융위기로 소비자 지갑이 닫히면서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기업들이 퇴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품질과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유연한 시장대응력이 생존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아시아의 맹주 도요타를 넘고 세계시장을 제패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대응력 확보를 목표로 내건 현대기아자동차의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SCM으로 도요타를 넘겠다=고유가 시대에도 고연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중대형 고급차 제품 구조를 고집했던 자동차 업계 거성들이 잇따라 몰락했다. 움직이는 시장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지각변동의 위기를 틈타 현대기아자동차의 글로벌 SCM 인프라 구축은 더욱 가속을 내고 있다. 판매, 생산, 자재 공급에 이르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SCM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 위주 SCM의 강자 도요타를 뛰어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현대기아차는 시장 수요의 변화를 즉시 생산에 반영하는 프로세스 혁신과 실시간 정보 전달을 위한 글로벌 표준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대리점의 판매 정보 및 수요 현황이 시스템을 통해 본사로 전달돼 생산계획과 연결되도록 했다. 전 세계 법인과 공장을 하나로 잇기 위해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주요 기간계 IT시스템의 표준화 및 통합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우선 시장 접점에 있는 전 세계 190개 수출국 중 70개 국가의 대리점 및 판매법인을 ‘판매용’ 거점에서 ‘수요예측’ 주체로 전환했다. 수출 물량 중 이 70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0%에 달하는 만큼 사실상 수출 물량의 대부분이 전 세계 대리점 및 판매법인의 수요예측 정보에 맞춰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또 3년 안에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해외 생산 물량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글로벌 SCM 시스템 인프라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요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기 위한 전략적 생산 유연성도 한층 높인다. 현대·기아간, 대량 양산용·소량 주문용차 생산방식간 교차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엔진 및 변속기와 같은 부품 통합 할당을 통해 생산 실행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수직계열화의 장점을 이용해 글로비스 등과 협력해 강력한 물류 네트워크와 가시성도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 생산 및 판매법인 SCM 시스템 구축이 내년 말 완료되면, 글로벌 시스템 표준화 및 통합 을 거쳐 ‘글로벌 오퍼레이션(Global Operation)’ 단계로 진입할 계획이다. 최상철 현대기아차 ERP 추진실 상무는 “세계 어느 판매법인과 공장이든 자유롭게 교차 주문과 납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진정한 글로벌 오퍼레이션을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년간의 프로세스 혁신과 SCM 고도화=현대기아차는 2005년부터 대대적 PI 활동과 SCM 혁신활동을 추진해왔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시장을 읽고 대처하기 위한 시장 대응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기 구축된 생산 계획 위주의 SCM을 전면 재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표>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된 현대기아자동차의 프로세스 혁신(PI) 추진 과정
<<표>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된 현대기아자동차의 프로세스 혁신(PI) 추진 과정>

1년 간의 프로세스 혁신 추진 방안 수립과 상세 설계를 마친 뒤 △시장 접점 수요 예측을 강화할 수 있는 수요예측 통계 기능 △국가별 대리점에서 본사까지 수요 정보가 연결될 수 있는 수요 계획 관리 기능 △빠른 납기 회답을 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새 SCM 시스템(APSⅡ)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 SCM 고도화가 마무리 된 2007년부터 해외 대리점의 판매무역시스템(Distributor Trading System)과 판매 법인의 ERP시스템에 판매 및 수요예측 정보가 입력되면 SCM 시스템과 연계돼 지역본부 등과 협의를 거친 후 본사로 전달된다. 이후 본사의 해외 영업부에서 최종적으로 수요 계획을 확정, 이 생산량이 월·주단위 판매·생산 회의를 거쳐 각 공장으로 할당돼 생산 일정이 할당된다.

시스템 구축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수요예측과 판매계획이 판매와 생산 할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속한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는 일이었다. 기존 본사 영업부에서 담당하던 수요 관리 업무를 각 국가별 현지 대리점으로 확산시킨 이유다. 최상철 상무는 “본사 영업팀이 총괄하던 판매 및 수요예측 정보를 국가별 대리점과 판매법인에서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하고 이 정보가 최대한 빠르게 생산에 직결되도록 했다”며 “시장 접점의 국가별 대리점 및 각 판매법인 담당자가 직접 주문 및 예측 정보를 입력하도록 수요 입력의 주체를 소비자 접점으로 확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해외로 수출되는 국내 자동차 생산량 중 90% 이상이 국가별 대리점 및 판매법인 수요예측 정보에 입각한 생산계획 체제하에 생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물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약 65% 수준이다.

◇글로벌 SCM 본격화, 미국에서 점화=현대기아차는 향후 3년 내 생산량 목표인 총 600만대 중 해외 생산량이 3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안에 해외 판매를 위해 현지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국내에서 수출되는 물량의 40%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글로벌 생산 기지를 전 세계 판매법인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SCM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SCM 프로세스
<현대기아자동차의 SCM 프로세스>

지난 2008년부터 미국 법인을 시작으로 SCM 시스템(APSⅡ) 구축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지난해 현대자동차 북미 판매법인과 앨러바마 공장에 시스템을 가동했다. 기아자동차 북미 판매법인과 조지아 공장도 오는 11월 시스템을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이달에는 기아자동차 유럽 법인 슬로바키아 공장에도 SCM 시스템을 가동한다.

기아자동차 북미 판매법인과 조지아 공장간에는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를 기반으로 생산공장·판매법인의 ERP시스템과 SCM을 연계해 판매부터 생산에 이르는 대단위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김군섭 SCM 혁신팀장은 “ERP로 입력된 판매 실적 및 주문오더 정보가 SCM 시스템으로 전달돼 생산 계획이 수립되고 이 정보가 다시 조지아 공장의 ERP로 전달돼 재고 파악과 협력업체 발주 등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며 “ERP와 SCM간 자유로운 정보 교환이 일어나 통합적 가시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지아 공장의 ERP는 협력업체의 시스템과 연계돼 협력업체의 생산 가능 현황 및 자재 정보까지 파악, 이 정보가 다시 생산계획에 반영된다. 판매법인의 ERP에서도 재고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통합적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갖춘 것이다. 이렇듯 SOA를 기반으로 ERP와 타 시스템을 연계하는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가 전 세계 시스템 통합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최 상무는 “통합 SCM 시스템과 수요 관리 프로세스 체계를 확립해 판매 예측 정보를 받아 생산계획까지 일주일 만에 연결되는 프로세스를 정착시켰다”고 말했다. 실제 이러한 수요 관리 강화와 빠른 대응력이 불황기에도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를 성장시키는 주요 동인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내년도에는 현대 유럽 법인을 비롯해 터키, 인도, 중국 공장에 시스템 구축을 확산해 내년 말 글로벌 SCM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 공장을 하나의 공장처럼=자동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약 3000개의 부품 및 조립품, 반제품이 존재한다. 일부 부품의 자재 조달 기간이 5개월이 이르는 등 매우 길기 때문에 확보 가능한 자재 내역 내에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산해 납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최 상무는 “빠르게 증가하는 해외 생산 물량의 적기 대응력을 확보하기 위해 북미와 유럽 등지역의 현대·기아간 교차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소량 주문차를 위한 BTO(Build To Order)방식과 대량 양산용 차를 위한 MTS(Make To Stock) 방식간 교차 생산력도 강화해 빠른 납기를 실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생산 주도 방식이 지배적일 때는 대부분의 제품을 MTS로 생산했지만 수요 주도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적시적소 수요에 최적화된 교차 생산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엔진, 변속기 등 생산 계획 일정을 못 맞추게 하는 일부 부품에 대한 통합 할당 계획도 중요해졌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SCM 시스템 구축이 내년 말 완료되면 시스템 통합 과정을 거친 후 ‘글로벌 오퍼레이션(Global Operation)’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상무는 “향후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물량 뿐 아니라, 해외 공장과 법인간 물류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다 지역간 스케쥴 및 플래닝이 요구될 것”이라며 “마치 한 국가의 한 공장처럼 같은 시스템과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기업 외부까지 아우르는 ‘큰 틀의 SCM’ 전략 구사하겠다”

[인터뷰] 최상철 현대기아자동차 ERP 추진실 상무

현대기아차 글로벌 SCM 프로젝트

막 미국에서 입국한 최상철 현대기아자동차 ERP추진실 상무를 마주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현지 시스템 통합 작업을 지휘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표정만큼은 매우 밝았다. 최 상무는 “SCM으로 도요타를 넘겠다”며 세계 자동차 산업의 위기 속에서 반드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도요타를 넘겠다’고 했는데, 도요타와 현대차의 SCM을 비교한다면.

▲도요타는 기업 내부 SCM에 전통적으로 강했다. 생산성과 품질이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이 강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제품 경쟁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SCM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 취약했다. 우리는 판매부터 생산까지 일체화하고, 수직계열화의 장점을 활용해 기업 외부까지 아우르는 큰 틀의 SCM 역량을 강화해 도요타를 넘을 계획이다. 예를 들어 도요타의 납기가 일주일 걸린다면 우리는 하루 만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현재 현대기아차 판매 신장률이 도요타에 비해 매우 높다. 공격적 수요 창출과 지속적 생산량 증가에 따라 도요타와는 다른 SCM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시장 중심 생산 체제로 변화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노력을 했나.

▲완성차 생산계획의 정확성을 가장 저하시키는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 등의 자원 할당기준을 수립하고 자재, 설비, 노조 등 실질적 생산상의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대·기아간 교류 엔진, 변속기 할당 계획을 통합해 SCM 시스템을 통해 최적할당 계획을 수립하고 양사간 파워 트레인(Power Train) 회의를 거쳐 정확한 생산 물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생산 계획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까운 시일 내 북미·유럽 지역 기아·현대간 교차 생산·판매 대응 체계를 수립할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수요 예측이 어렵지 않았나.

▲각 대리점과 딜러를 통해 직접 판매정보와 수요예측 정보를 입력하게끔 했으나 판매 담당자들 변화관리가 쉽지 않았다. 개인의 업무적 변화와 이익 관계를 큰 틀 SCM 전략과 동기화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현재 미국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이 7% 수준인데, 점유율이 10% 이상으로 확대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 딜러에 대한 영향력이 높아져서 수요 예측 변화관리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제네시스 등 차종의 품질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최근 브랜드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SCM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나.

▲첫번째는 비즈니스 전략과 SCM 목표가 맞물려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맞춰 비즈니스 전략과 SCM 전략이 동기화되는 것이 어려웠다. 수요예측이 아무리 정확해도 환경이 급변하니까 이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두번째는 업무담당자들간의 비즈니스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제 업무담당자별 일에 대한 변화관리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SCM 학자들의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면서 느낀 격차였다.

--글로벌 SCM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체를 볼 수 있는 가시성이다. 수많은 협력사와 판매 법인, 대리점 간 정보교환이 쉽지 않다. 우리는 해외 물류 회사가 아닌 그룹사인 글로비스와 협력해 개발부터 물류, 그리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통합된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통합 SCM 체제 완료를 통한 글로벌 오퍼레이션을 향후 목표로 삼고 있다. 1대 다수로 연결되던 생산법인과 판매법인간 주문 및 생산 관계를, 다수 판매법인 대 다수 생산공장으로 확대해 어느 법인과 공장에서도 효율적인 주문과 조달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유효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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